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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기생충 총정리 상징 해설 6가지 키워드 해석 (스포 매우 주의)



들어가며

영화를 관람하기 전, 저는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었습니다. 한국 영화 최초 칸 황금종려상 수상과 기묘한 포스터 뿐이었죠. 저는 어려운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보통 국제영화제 수상작은 잘 보지 않아요. 아마도 영화 보는 수준이 썩 높지 않은 탓일 겁니다. (마블의 화려한 공상 속 히어로와 디즈니의 밑도 끝도 없이 신나고 동화적인 감성을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기생충’을 꼭 관람하고 싶었던 건 믿고 보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과 잘 맞는 감독이 있기 마련이죠. 제게는 봉감독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선택 기준을 감독으로 두는 건 영화 선택의 성공을 꽤 높여주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화 관람을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131분의 꽤 긴 러닝타임 동안 시계를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 요즘 극장을 가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하고 시계를 한 두번씩 꼭 보곤 하는데요.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는 한 번도 시계를 찾지 않았었습니다. 꽤나 몰입하기도 했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잠식하고 가지를 쳐서 함께 본 친구와 며칠을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는 것, 문화적 동질감을 처절하게 느껴가며 관람했던 것 등이 떠오릅니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것들을 6가지 키워드로 나열해서 가볍게 적어 보겠습니다.


주의: 본 포스트에는 영화의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만 본 포스트를 보시길 권합니다.









계급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더 이상 영주와 농노, 귀족과 평민, 양반과 상놈으로 대표되는 계급사회가 아닙니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분명히 구분되는 계층이 존재하며, 도무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암묵적으로 그 자체가 계급이 되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에서는 객실로 포스트 아포칼리스 속 계급사회를 표현했다면 이번엔 계단입니다. 지하인, 반지하인, 지상인의 계층(계급)을 계단을 통해서 극명하게 비추어 냅니다. 그 중 단연 압권은 폭우가 내리는 장면에서 끝없이 이어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반지하인 기택(송강호) 가족은 박사장(이선균)의 집에서 벌인 난장 술파티를 곡절 끝에 급작스레 마친 후, 온 몸으로 폭우를 맞아 가며 끝도 없어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 옵니다. 돌아온 그들을 맞는 건 폭우에 완벽히 침수되어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반지하 집이었습니다. 폭우는 한 순간에 반지하인의 터전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고 말았어요. 반면 박사장 가족에게 폭우는 오랜만의 가족 캠핑을 망치지만, 정원에 펼쳐 놓은 막내 다송의 미제 텐트 속에 물 한방울 떨궈내지 못하는 미약함이며, 오히려 미세먼지를 걷어내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가든 파티를 열게 해주는 고마운 날씨입니다. 이런 박사장의 집으로부터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계단을 내려가야 기택 가족의 반지하 집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계단의 높이만큼 다릅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라기도 뭐하지만)에 따라 기택 가족이 마시는 술의 종류가 바뀌는 것도 깨알 재미입니다. 피자박스를 접어 번 돈으로는 저렴이 발포주 필라이트. 박사장 집에 취직해서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고급 맥주 삿포로. 캠핑으로 비어 있는 박사장의 집에서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양주의 향연. 현실감이 넘쳐 흐릅니다.





공간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공간은 생각보다 별로 겹치지 않습니다. 사는 집, 동네가 다른 건 기본이고 다니는 식당, 교통수단, 하다못해 비행기의 좌석까지.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의 창문에서는 하루 중 잠시 동안의 햇빛과 후줄근한 골목길, 밤이 되면 취객의 노상방뇨가 보입니다. 화장실의 변기는 계단을 몇 개나 올라 가야 합니다. 실제로 지어진 지 꽤 된 건물의 반지하 속 변기는 집에서 몇 계단씩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기의 배수압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비책이며 하수구 역류에 꽤나 취약하기도 합니다. 
반면 박사장 가족이 사는 저택의 창문에서는 따스한 햇빛과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이는 정원이 보입니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됩니다. 거친 비바람이 제 아무리 시끄럽게 요동을 쳐도 거실 창문을 지나고 나면 잠자기 좋은 빗소리로 바뀌고 마는 쾌적하고 아늑한 공간입니다. 박사장 가족이 캠핑으로 집을 비운 사이, 기택 가족은 그곳을 충분하게 즐깁니다. 욕조에서 샤워를 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거하게 술판을 벌입니다. 고급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판입니다. 빈 집을 내 집처럼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곧 박사장 가족이 돌아올 것만 같아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합니다.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박사장 집에서의 난장 술판을 다루지만 보는 사람은 꽤나 마음이 쪼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사장 가족은 폭우로 캠핑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택 가족은 급하게 현실로 돌아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 불을 켜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흡사 바퀴벌레와도 같습니다. 기택 가족은 그렇게 박사장 가족의 공간을 공유합니다. 





(가정부 문광이 선을 넘는 장면입니다.)

선(Line)

계층 또는 계급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들이 흔히 부자를 사람 냄새가 없는 악인 또는 악인에 준하는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박사장(이선균)은 상대가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꽤나 관대한 캐릭터입니다. 부를 이룰만한 실력이 있어 보이며 경우에 바르고 나이스합니다. 심지어 가정적이기기도 합니다. 사기캐죠. 회사로 찾아온 기택을 처음 만나는 박사장의 점잖은 태도와 점잖이 운전 실력을 시험하는 과정,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가족 캠핑을 실행하고 아내와 아들 딸들에게 살갑습니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의 가난했던 시절에 맨주먹으로 부를 이루던 때와 달리 부를 세습하면서 잘 교육받은 부자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너가 좋고 젠틀하며 어려서부터 어려움 없이 자라니까 성격은 꼬인 데가 없다. 그러니까 부자가 착하기도 한 세상이다. 반면 가난뱅이는 더욱 박탈감이 커지고, 가난해서 성격이 더 나빠지기 쉬운 세상이 됐다. 21세기를 생각한다는 무슨 모임에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등의 내 또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들 부드럽고 예의바를 수가 없었다. 겉으로만 내보이는 모습이랄 수도 있지만 속속들이 정말 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우리네 삶의 한 면모일 것입니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부자의 방식은 리얼하고 처세술로써도(?) 본받을만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박사장의 차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벌인 운전기사(모함이죠)와 결핵으로 의심되는 가정부(역시 모함입니다)를 해고하는 과정입니다. 선을 넘는 상황과 행위를 실제로는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냥 적당한 구실로 해고합니다. 잘잘못을 따지거나 서로 얼굴 붉히며 아웅다웅하지 않습니다. 



삑사리

봉감독의 영화에는 삑사리가 항상 등장합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논두렁(범죄현장)을 한없이 구르는 사람들이 그랬고, 괴물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실탄이 떨어진다거나 화염병을 삐끗하고 떨어뜨립니다. 기생충에서는 반지하인 가족과 지하인 가족이 조우하는 장면에서 중대한 삑사리가 등장합니다. 덕분에 상황은 자연스럽게 생존을 건 막장 혈투로 치닫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삑사리가 있는데, 진지한 장면에서 피식하게 하는 봉감독만의 재기발랄함이 곳곳에 존재하며 덕분에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냅니다. 가히 삑사리의 미학이라 할 만합니다.



봉준호 장르

“우리가 보통 영화를 분류하잖아요. 멜로영화다, 액션영화다, 코미디다, 호러영화다, 그런데 봉준호 당신의 영화는 항상 장르를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다, 또는 장르가 뒤섞여 있다 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스리슬쩍 하는 것이냐,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많이 받죠. 미국의 어떤 매체였던가 이번에 기생충에 대한 리뷰를 코멘트를 하면서 봉준호 장르다 본인이 장르화 되었다 라는 코멘트를 한 기사가 있었는데 저한테는 그게 더할 나위 없는 찬사로 (후략)" - 봉준호 감독 인터뷰 중에서
영화는 코믹 드라마로 시작해 호러, 에로와 청춘멜로를 거쳐 칼부림의 스릴러로 이어집니다. 한가지 장르에 가둘 수가 없습니다. 뻔하지 않은 구성으로 신선함을 자아냅니다.


냄새

칼부림의 방아쇠가 되기도 한 멸시의 상징입니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빈부격차를 빛, 공간, 계단 등으로 상징하여 표현합니다. 그 중 냄새는 가장 처절한 상징이었습니다. 도무지 씻어낼래야 씻어낼 수 없는 반지하 냄새는 계층 간의 멸시와 역린을 만들어 냅니다. 가까운 사이어도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냄새’입니다. 공격적인 무례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건 박사장은 갑질하듯 공공장소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부 간의 내밀한 대화를 했을 뿐입니다. 이것을 나쁜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상황이 기묘해서 기택네가 전부 들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지요. 격리된 공간에서 끼리끼리하는 대화를 가까이에 펼쳐 놓은 (불편함을 의도한) 연출입니다. 결국 마지막 생일파티 장면에서 박사장은 기택의 선을 넘어버려 공격당하고 맙니다. 
박사장이 조여정에게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무말랭이 냄새로 시작되어 지하철 타는 사람들 냄새로 끝납니다. ‘니 얘기 아닌 것 같지?’ 관객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느낌입니다. 대상이 반지하라는 공간에 머물러 무말랭이 냄새에 그치면 그 대상이 많이 축소되지만, 지하철로 확장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기택 가족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 것이. 아마도 봉준호 감독은 관객이 어느 쪽에(박사장 가족 vs 기택 가족) 감정을 이입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영화 내내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영리한 상업적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냄새에 대한 경험이 현저히 적을 수 밖에 없는 어린 다송이가 처음으로 기택의 냄새를 발견한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씁쓸하게만 느껴집니다. 







그 밖에.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기택 가족의 반지하 집과 으리으리한 박사장의 저택은 모두 세트였다고 하는군요. 

*투자자명단이 한 눈에 짧게 나오고 끝나 좋았습니다. 텍스트 배치도 예뻤구요. 

*기택의 부인 충숙이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이었던 것이 좀 뜬금없었는데요. 스토리 상 이유가 있었네요. 지하인(문광의 남편 근세)과 몸으로 싸워서 이겨내야 했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선출 여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장면이겠지요. 

*수석은 역설적으로 가난의 상징이라 봅니다. 재물과 합격을 가져온다던 수석은 실제로도 기택의 가족에게 재물과 합격을 가져왔지만 폭우 속 물난리에서 둥실 떠오른 수석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때부터 기우는 수석이 자신에게 붙었다며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떨쳐낼 수 없는 가난을 상징하는 수석으로 죽을만큼 공격당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수석이 가짜인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6번 종소리의 의미는 사운드 체크라고 합니다. 5.1채널(즉 6개의 스피커 채널)에서 동일한 음량이 잘 나오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인데요. 만약 6개의 종소리 중 하나라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해당 상영관의 음향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극장 측에 알려 달라고 하네요 -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중에서

*영화에 나온 생수는 보스워터였습니다. 물병이 예뻐서 검색해 보니 노르웨이산 고급 생수브랜드인가 보군요.  

*지하인 근세와 기택은 사업 실패의 경험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대왕카스테라를 창업했다가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타자에 의해 망해버린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은 이런 저런 생각할 거리를 남겨 줍니다.




엔딩크레딧 강아지 세마리 본명이 나옵니다.  ‘쮸니’의 본명은 감자, ‘베리’의 본명은 망치, ‘푸푸’의 본명은 뭉치. 





세줄 요약

부자=유복=No구김살=지상=햇빛
가난=궁상=사기꾼=지하=어둠=냄새
계단으로 구조화하고 냄새로 극대화 




한줄 요약

한지붕 세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