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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택시운전사 리뷰 - 5월의 광주와 힌츠페터(스포無)

 

 

화려한 휴가와 26년에 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상업영화가 지난 주 8월 2일에 개봉했습니다.

믿고 보는 송배우 주연의 '택시운전사'입니다. 개봉 첫 주에 43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개봉 첫 주말 스코어' 역대 3위를 기록했습니다. (1위 명량-476만/ 2위 부산행 475만)

 

 

 

택시운전사 1차 메이킹 예고편

 

 

 

택시 운전사 2차 메인 예고편

 

 

아직 개봉 초기이니 스포없이 간단히 감상평을 남겨 보자면,

 

택시운전사는 교과서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하지만 너무 힘들지는 않게 접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송배우의 연기는 여전히 믿고 보는 대배우의 연기답게 아름답습니다. 특히 넉살과 웃음으로 표현되는 그만의 생활연기는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에요. 송강호라는 사람을 완전히 잊게 해줍니다. 영락없는 만섭(극중 이름)이에요.

 

사실 전 이런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영화를 접하는 게 늘 조금은 두렵습니다. 보고 나서 마음이 너무 먹먹하고 힘들 것 같은 것이 그 이유인데요. 다행히 택시 운전사는 그런 느낌이 크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우울할 때 보면 더 우울해지는 영화야.. 라고 하지만 전 택시운전사가 관객을 힘들게 하는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중간중간 고비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화려한 휴가가 훨씬 더 참상 그 자체를 리얼하게 다루었어요. 그에 반해 택시운전사는 세련된 영화적 연출로 관객이 너무 힘들지는 않게 참상을 다룹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울림이 남아요. 올 한해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아니 최고의 영화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입장에서 특히 불편한 애국심 마케팅이나 눈물 젖은 신파극을 강요하지 않아 그 부분도 참 좋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전라도 말이 살짝 어색하다는 거에요. 아 뭔가 그.. 네이티브의 그 느낌적인 느낌이 좀 부족합니다. 좀 더 현실감 있는 남도 억양이 좀 아쉬웠어요.

 

기본적으로 전 택시 운전사의 키워드는 인간애라고 생각해요. 다친 사람을 보면 가서 부축해 주고,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다들 살아 있는 그리고 꼭 있어야 하는 그런 인간애를 다룬 영화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기본적인 인간애조차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커다란 실수가 모여 5월의 그날, 끔찍한 참상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부디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전하길 바랍니다.

 


 

 

 

힌츠페터, 극중 피터 역을 맡아 열연한 토마스 크레취만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포스팅을 해야지 했는데 그건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축, 실존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80년 5월의 광주를 세상에 알린 힌츠페터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그저 어떤 외신기자가 광주의 참상을 알렸다고만 알고 있었어요. 목숨을 걸고 잠입 취재를 한 것도, 촬영 필름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어떤 과정으로 한국을 빠져나와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렸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년 7월 6일 ~ 2016년 1월 25일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힌츠페터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함부르크 지국의 방송 카메라맨으로 입사했다. 1967년 초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아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으며, 69년에는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1973년 도쿄 지국으로 옮겨 89년까지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1980년 5월 일본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광주로 들어와 목숨을 걸고 계엄군에 의한 참사 현장을 기록, 독일 본사로 보내 광주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렸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촬영부분 Part 2

 

 

 

힌츠페터(Jurgen Hinzpeter) 촬영부분 Part 3

 

 

 

당시 언론상황은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취재를 해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날조가 되기 좋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언론은 5.18'사태'로 규정하며 '폭도가 광주를 점령해 아비규환이 되었다!' 라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그게 지금까지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꽤 됩니다) 정말 그가 5월의 그 날, 광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을 취재하지 않았다면, 또 그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힌츠페터 기자는 그 일로 한국정부에 찍혀 86년 서울의 한 시위현장에서 사복경찰에게 집중구타를 당해 목뼈가 부러졌고, 결국 그 때문에 기자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출처 - 나무위키/ http://blog.donga.com/confetti/archives/66)

 

힌츠페터는 생전에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해의 일부(모발과 손톱 등)를 이은석 도예작가가 만든 무등산 분청사기 함에 담아 망월동 구묘역 표지석 아래 안장했습니다. 내년 5월에 광주에 가게 된다면 힌츠페터의 묘역에 꼭 다녀와야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역시나 한참 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영화의 울림이 마음 속에 오래 남네요.

김사복과 힌츠페터의 숭고한 인간애와 진실을 마주해 낸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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